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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아툴 가완디 저/김희정 역 | 부키 | 2015년 05월 29일 | 원서 : Being Mortal (2014)
몸의 쇠락은 넝쿨이 자라는 것처럼 진행된다. 하루하루 지내면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대로 적응해 가며 산다. 그러다가 뭔가 일이 벌어지면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벨라 여사는 시력 상실과 기억력 문제 때문에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실버스톤 박사가 곁에 없었다면 그녀는 요양원으로 가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아내가 옷 입는 것을 돕고 복용해야 할 약을 챙겨 준다. 아침과 점심을 챙기는 것도 그의 일이다. 아내를 산책시키고, 예약된 날에 의사에게 데려가기도 한다. "지금은 아내가 내 인생의 목적이에요." 그가 말했다.
벨라 여사가 늘 남편의 방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 말다툼을 해요. 온갖 것으로 서로에게 화를 내곤 하지요." 박사가 말한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서로를 용서하는 것도 참 잘합니다."
그는 이 책임감이 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삶의 폭이 좁아짐에 따라, 아내를 돌보는 일은 자신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우리는 내적인 빛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외적인 빛을 보기 위해 노력해 보자."
"내 생각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걸 뭔가 본질적인 품위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게 유행이 된 듯하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죽음을 궁극의 적으로 여기는 용감한 관점을 더 선호한다. 빛이 꺼져 가는 상황에 맞서 맹렬히 싸우는 사람들을 나무랄 만한 점은 아무것도 없다.
1.
노화나 죽음만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던 것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의 결과론적인 반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연인 사이가 멀어질 때, 아이가 비행을 할 때 등. 그것으로 삶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 좁아지는 폭 안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자신이 바라던 모양새로는 찾을 수 없으리라는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간혹 삶의 폭이 넓은 것을 그 자체만으로도 은총, 행복의 이유, 추구해야 할 가치 등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은 흔히 하지만, 많은 선택은 사려 없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러나 주어진 삶의 폭 안에서, 무엇을 포기할 수 있고 무엇을 포기할 수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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