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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 김영하 저 | 복복서가 | 2022년 09월 05일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것들을 설계한 건 우리지만 우리도 기계에 맞추기 위해 우리 자신을 꾸준히 변화시켜왔어. 로봇 청소기가 잘 돌아다닐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앴고, 자연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초기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마치 로봇처럼 말하곤 했던 거 기억 안 나?
우리는 곧 당신의 의식과 기억을 클라우드에 올릴 것이고, 그게 완료되면 당신은 몸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의 인공지능 의식과 소통하면서 전 세계에 깔린 수조 개의 카메라, 마이크, 각종 센서 들을 통해 모든 걸 보고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한번 이걸 경험하고 나면 오히려 예전의 불편했던 몸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고들 합니다. 인간의 육체는 진화적 우연의 산물일 뿐 가장 우월한 형태도 아닙니다.
인간들이 참 무정한 게, 자기들은 어둡고 우울하면서 휴머노이드는 밝고 명랑하기를 바라거든요.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확고하면서 생각이 많은 휴머노이드 주세요'하는 고객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어요.
어쩌면 몇 년은 더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작별의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허락된, 아주 잠깐의 휴식 같은 것이었다.
1.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를 와이프에게 추천한 뒤, 추천받은 책이었다. 로봇공학이 발전한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낸다는 공통점에서,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를 읽으며 다음 책으로 『작별인사』를 추천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는 상대로부터 추천받은 책을 읽은 뒤 감상을 공유하고, 차례를 바꿔 상대에게 다른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한다. 와이프가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를 읽고 우리가 그에 대한 감상을 공유할 때, 나는 '무언가로 나를 정의하고자 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데스 + 로봇』의 「지마 블루」편도 함께 보았다.
자기 표현에 대한 욕구는 형성충동이며, 자기 정의에 대한 욕구는 형식충동이다.
남들과 다른 것을 통해서 자신을 정의하는 시도는 과정적인 것이며, 남이라는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정의하고자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두 발로 걷는 깃털 없는 짐승"이라는 명제는 전자의 것이고,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후자의 것이다. 두 명제에서 인간이라는 전건(前件)이 후건(後件)과 맺는 관계는 사실 다르다. 그것은 괜찮다. 인간 이외의 얼마나 많은 동물이 얼마나 이성적이건, '이성적 동물'이라고 여전히 인간을 칭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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