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독서노트

자유의지/학문적 태도/정체성에 대하여 (셸리 케이건, 『죽음이란 무엇인가』)

noa_xyz 2025. 4. 1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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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10주년 기념판) - 셸리 케이건 저/박세연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02월 24일 | 원제 : Death (2012)

 


 

 

1. 자유의지에 대하여

실제로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양립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철학자도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인간이 결정론에 지배를 받는 존재하고 하더라도[sic], 다소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므로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양립주의(compatibilism)'라고 부른다.
- 책 내용 중

 

육면체 주사위를 던진다. 던져진 주사위는 튀어 오르다가 책상 위에 떨어진 뒤 얼마 구르지 못하고 키보드며 컵에 부딪히더니 바닥으로 튕겨져 떨어진다. 다시 달그락거리는 주사위는 의자 다리에 가 닿으며 멈춘다. 이때 주사위 윗면에는 4개의 눈금이 있다. 그렇게 주사위에서는 '4가 나왔다.' 적어도 주사위가 던져진 순간에는 주사위에서 얻게 될 값이 정해지리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인다. 위 상황에서 주사위가 던져진 이후에는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비결정적 요인인 자유의지가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사위가 던져지기 이전이라면 어떨까. 주사위를 던지는 세기와 방향, 주사위를 던질 때의 손목이나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은 모두 주사위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여 수행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사위를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서 주사위는 키보드나 컵에 부딪히지 않을 수 있었고, 주사위에서는 4가 아닌 다른 숫자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던 일이 아니라는 것이 결정론이다. 결정론은 '주사위를 어떻게 던지든 주사위의 값은 4가 나온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데닛은 그 결과 동물은 왜 그런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상황행동기계”(situation-action machine)에 머무른 반면에 인간은 한 발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며, 어떤 결과가 가장 가치 있는지를 결정하여 선택하는 “선택기계”(choice machine)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진단한다.
- 권수현,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대립 해소를 위한 방법론적 대안 ―데닛의 양립론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Vol.35, 2008

 

그럼에도 선택기계로서의 인간은 주사위를 어떻게 던질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그렇기에 결정은 비결정적이라니. 자유의지라는 환상은 이성의 부산물이라고 믿는다. 대니얼 데닛을 읽어보자.

 

 

 

2. 학문적 태도에 대하여

의식과 같은 다양한 현상에 대해 물리주의자들은 아직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
과학은 영혼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혼의 존재 가능성 자체를 부정한다면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처사일 뿐이다.
- 책 내용 중

 

학문은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종교도 그렇고 사상도 그렇다. 반증불가능성이든 연구 프로그램이든 학문의 자격은 무엇으로도 정의될 수 있다. 예측력/설명력/재현성을 갖춘 지식 체계를 학문으로 인정하는 것도 좋다. 그러한 만큼, 학문이 진리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어떤 지식이나 믿음의 체계가 학문적이고 과학적인가의 여부는 그저 지식 체계의 정의에 따른 문제일 뿐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우리가 관찰하는 대상이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의 방법론에 노출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 저, 조호근 역,『물리와 철학』(서커스출판상회, 2018), p.14

 

 

 

3. 정체성에 대하여

2006년, 내 자동차의 엔진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자동차를 폐차장에 넘겼다. 그런데 4년 후인 2010년에 우연히 폐차장을 지나가다 과거의 내 자동차처럼 보이는 자동차를 봤다고 가정해보자(그림 8)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 차가 저기 있군." 그렇다면 그것은 내 차일까, 아닐까?
- 책 내용 중

 

정체성은 인지되고 언어화될 수 있는 특징들의 집합이다. 테세우스의 배, 시공간 벌레(spacetime worm)와 인과벌레(causal w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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